응답하라 민주주의

세상 이야기 2013.12.20 01:11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곳이 있습니다. 공중파든 케이블이든, 대한민국에서 좀 그럴싸하게 방송을 할라치면 여기서 그 방송한 내용에 대해서 심의를 받아야 한답니다. 저 양반들이 너희 방송국은 안 돼. 하면 그 날로 방송국을 문 닫아야 할 수도 있고, 이런 방송은 하면 안 돼. 하면 그것으로 프로그램 하나를 날려버릴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기구죠. 거기서 위원으로 계신 분이 이상호 기자의 '고Bal뉴스'에 출연하여 이번 심사에 따라서 반드시 종편 하나는 가지치기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서 그 위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던 것도 같네요.




그런 방통위가, 19일 오후 전체회의를 통해 'JTBC 뉴스 9' 에 대해서 경고 및 관계자 징계라는 처분을 내렸다는데요. 이게, 중징계라는군요. 그런데 그 이유가 석연치가 않습니다. 11월 5일 뉴스에서 '정부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보도에서 "정부에 부정적인 사람들의 의견만 내보냈다" 라는 것이 징계의 이유랍디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에 이어질 재승인 심사에서 감점 요인이 된다는군요.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저는 이 만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통합진보당부터, 대화록, 뉴라이트 교과서, 박창신 신부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현 정부의 기조에 반하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박근혜의 몽둥이에 맞아 쓰러졌군요. 그리고 이번에는 손석희 뉴스 9이 그 목표가 된 모양입니다. 저 만평은 12월 초에 공개된 것으로, 작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예견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잘 보십시오. 몽둥이에 묻은 피가 어떤 글자를 나타내고 있는지.)




저는 2013년 12월 18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흥사단 본부 3층에서 있었던 청년 시국 연석 회의가 주최한 '응답하라 민주주의' 토크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The맑음, 이지상 님이 오프닝과 중간 무대를 감동적으로 꾸며주셨고요, 패널로는 주최측의 3명, 민변의 박주민 변호사, 3분 직설로 유명한 서해성 작가까지 모두 다섯 분이었습니다. 



맨 뒷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이라 화질이 그리 좋지는 않군요. 양해 바랍니다.




이 자리에서 흥미로운 말씀이 있었는데요. 민주주의란 제도는 그 특성 상, (주권자인)국민들이 원하면 어떤 형태로든 지배 형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권자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알고 계시는데요. 바로 그 말의 속뜻은, 주권자인 국민이 그 주권을 한 사람에게 집중하기 원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요, 스스로 권리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투표할 때 그 권리를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듯이, 투표를 통해 독재자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고, 심지어 왕정으로 회귀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1년 전, 우리는 독재를 선택한 것이지요. 40여년 전, 이 나라를 독재로 다스렸던 사람의 딸에게 권력을 쥐어 주면서 말입니다.




철도민영화, 의료민영화, 국정원 대선 개입, 검찰총장 낙마, 군의 대선 개입 의혹까지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혼란스러울 지경입니다. 여기에 연예인 도박이네, 성매매네 하는 사건들은 다른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시선보다, 오히려 그 사건이 시시콜콜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은 대통령의 탄핵을 부르짖고, 대통령은 그 외침을 듣는지 마는지, 아니 알고는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뻔뻔하게 '국민만 보고 가겠다' 라며 만면에 미소를 띄웠죠. 




그런데 이거 아십니까? 그녀는 정확히 2년 전, 2011년 12월 19일에도 똑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수락하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 라고 말했지요. 그 자리에서 그녀는 "정치의 본질은 `안거낙업(安居樂業)'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안거낙업. 편안히 거하고, 즐겁게 일한다는 뜻입니다. 국민을 편하게 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의미일텐데요. 어떻습니까. 그녀는 이 발언을 하고 정확히 1년 후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그 1년 후에 또 다시 국민만 보고 가겠다며 웃음을 띄웠지요.




하지만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안녕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듯이 캠퍼스의 벽이란 벽에는 온통 대자보가 붙어있고, 심지어 대로변 전봇대에도 붙어있으며, 거리에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여고생이 등장했고, 거의 매일 저녁 엄동설한 속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습니다. 비록, 어떤 공중파 언론도, 심지어 케이블에서 조차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만, 국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아서 박근혜의 퇴진을 외치고 있습니다. 대자보가 찢겨 나가고, 시청 앞 광장은 경찰들의 버스 바리케이트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정확히 볼 수도 없는 지경일지라도, 그 버스 바리케이트보다 더 높이 솟아 장사진을 이룬 깃발들의 행렬로 그 열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두운 밤, 사람들은 제 갈길 가기에 바쁠지 몰라도, 그 곳, 그 시간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대학생의 대자보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전국에서 '여기, 아직 살아있다' 라는 듯이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지금,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전쟁터에서 한 병사의 아군을 향한 다급한 외침에 여기 저기에서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응답을 듣는 기분입니다. 이 외침을 그냥 흘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외침에 응당 대답해야만 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자, 모여서 함께 깃발을 들자, 함께 모여서 다시 싸우자, 죽지 않은 자, 여기 모여서 다시 한 번 승리를 위해 힘을 모아보자 라고 그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단체가 되었든, 어떤 정당이 되었든, 각자의 자리에서 죽지 않고 살아주기를 바란다고 응답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들을 규합하여 하나의 목소리로, 거대한 힘으로 응집해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1년 전 주권을 박근혜에게로 넘겨주기를 원치 않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이 목소리를 받아 행동으로 실천해 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백년 전, 이 땅에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한 도산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자보를 붙이고, 촛불을 들고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함께, 낙망하지 않는 청년이 되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과 같은 때에 분연히 일어나, 민족의 부름에 답할 수 있는 인물이 더욱 늘어나기를 소망합니다.



* 위의 만평 속 박근혜가 들고 있는 몽둥이에 피로 물든 글자는 다름 아닌, MBC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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